한국의 세계유산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극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영향을 바탕으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조선왕조의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한국의 독립성 및 한국 역사상 다양한 종교·철학이 조화롭게 공존해온 가치를 상징하는 유산이다.
동 유산은 본성(한봉성과 봉함성을 포함)과 신남성(동서돈대)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으로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간 축성술과 도시 계획이 상호 교류한 증거이다.
또한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 체계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며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가치를 보유한다.
남한산성은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이다. 남한산성은 둘레 12km에 이르며 중심 도시가 입지할 수 있을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였다.
남한산성은 7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져 여러 차례 재건되었으며, 특히 17세기 청의 공격에 대비해 크게 중건된 바 있다. 남한산성은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수용하면서 서양식 무기 도입에 따른 성곽축조 기술의 변화를 종합한 군사 방어기술의 개념을 집대성하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1592~1598)과 연이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청과의 전쟁(1627-1637)등을 겪으며 일본의 아주치-모모야마 시대, 중국의 명나라, 청나라 시대와 광범위하게 상호 교류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화포와 무기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고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산성을 지속적으로 증·개축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남한산성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간 축성술과 도시 계획술을 종합적으로 구현하게 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인정받은 남한산성의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남한산성은 16세기와 18세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 간에 산성 건축술이 상호 교류한 중요한 증거이다. 남한산성은 국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무기 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탁월한 증거로, 조선의 자주권과 독립성을 수호하기 위해 유사시의 임시수도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 도시이다.
둘째, 남한산성은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 체계의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남한산성은 험한 지형을 활용하여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단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가지정 문화재 2개(성곽, 남한산성 행궁), 경기도 지정문화재 6건(수어장대, 연무관, 숭렬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및 경기도 기념물 2건(망월사지, 개원사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은 36,447㎢로 성 안쪽이 2,317㎢(6%), 성 바깥쪽이 34,130㎢(94%)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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