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의 기억, 레분』
『바람 끝의 기억, 레분』작고 낯선 섬.그곳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다.하지만 쿠슈호 캠핑장의 고요함은, 내 마음의 주름까지 펼쳐주는 듯했다.나는 혼자였다. 아스라이 빛바랜 텐트를 치고, 호숫가에 걸터앉았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바람이, 내 오래된 마음의 틈으로 스며들었다.해는 느리게 지고, 구름은 느릿한 꿈처럼 흘렀다.처음엔 적막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이 고요함은 ‘정적’이 아닌, ‘귀 기울일 수 있는 여백’이었다.레분섬 북쪽. 호수에서 조금 걸어가면 넓은 들판이 있다. 그곳에 개불알꽃이 피어 있다.이름은 이상했지만, 그 꽃들은 슬프도록 순했다.거센 바닷바람을 그대로 견디며 살아가는 꽃들. 작고, 여리고, 강한.그곳에 앉아 나는 오랜만에 나 자신을 떠올렸다.누군가를 향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
2025. 8. 7.
「바람이 전한 약속」
「바람이 전한 약속」신기황 저바다는 말을 걸지 않았다.대신 바람이 그 말을 대신했다.그리고 나는, 그 대답을 들으러 이 섬에 왔다.그와 나는 한때 약속을 했다.세상에서 가장 북쪽 끝에 있는 섬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그 약속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그는 여행을 좋아했다.낯선 바람이 부는 곳에 가서 그 공기를 마시고, 지도를 펴지 않고 길을 걸었다.나는 늘 그의 옆에서 그걸 지켜봤다. 우리는 대책 없이 길을 잃었고, 그러면서 웃었고, 결국엔 돌아오는 길을 찾아냈다.그런데 그날, 그는 홀로 떠났다.돌아오지 않았다.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바다를 보지 못했다.바다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 같았고, 나는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 그가..
2025.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