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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사우디 : 알울라: 금단의 장소였던 중동의 고대 불가사의

by 신기황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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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YULIA DENISYUK

아름다운 계곡에 자리한 이 오아시스는 여러 문명의 젖줄이었다. 한동안 외부인 출입이 금지됐었지만, 이제 다시 그 비밀스러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모래와 바위에 반사돼 평원으로 퍼지는 사막 빛의 독특한 매력을 좋아한다. 그 안에는 내가 갈망해온 고요함이 있고, 사막과 사람들이 맺어온 역사가 있다. 인간은 중동의 혹독한 환경에서 수 천년간 생존과 번영을 이어왔다. 그러한 독창성은 어쩌면 아라비아 반도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람으로 꼽히는 이 ‘알울라’에서 단연 두드러질 것이다.

 

사우디 북서부 히자즈 지역, 사암과 화강암이 높게 솟은 계곡 사이에 있는 이 사막 오아시스는 지난 20만 년간 인류의 삶을 지지해 왔다. 건조한 산악 지대 사막에 숨겨진 이 수원은 비옥한 토양과 더불어 여러 문명을 번성하게 했다.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후 100년까지 이곳에서 꽃을 피웠던 다단 왕국과 리흐얀 왕국이 그 예다. 또한 오늘날로 따지면 요르단 페트라에 수도를 세웠던 나바테아 문명 역시 이 곳에 ‘헤그라’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하지만 이곳은 한 동안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닫혀 있었다. 다시 문을 연 것은 사우디가 비종교 여행에 대한 관광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한 2019년부터다. 오늘날 알울라 곳곳에는 과거에서 남겨진 메아리가 신비롭게 울려퍼진다. 고고학자들 역시 알울라의 수많은 고분과 바위 비문을 섬세하게 살피며, 고대 오아시스에 남겨진 비밀에서 베일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바위에 새겨진 왕국과 고대 메시지

기원전 800년 초 무렵, 알울라 계곡에는 돌로 만들어진 도시가 번성했다. 바로 ‘다단’이다. 이 도시는 같은 이름의 다단 왕국과 이후 리흐얀 왕국의 수도였다. 또한 유향 교역에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중해로 향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다단인들은 자체적으로 문자를 만들었다. 그 흔적은 현재 바위에 새겨져 있다. 특히 “알울라 야외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자발 이크마 유적지에는 2500년이 넘는 바위 비문들이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 그 내용은 단순한 낙서부터 신에게 바치는 제물에 대한 기록까지 다양하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나바테아인

기원전 1세기 경, 남부 레반트(오늘날 요르단)의 나바테아 문명이 아라비아 반도 북서부로 세력을 넓혔다. 당시 이 왕국의 수도는 페트라. 하지만 나바테아인들이 가장 중시했던 도시는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헤그라였다.

헤그라에 있는 '카스르 알 파리드' 고분에는 약 200년간 숙련된 석공들이 만든 장엄한 기념물이 남아 있다. 비문 기록으로 봤을 때, 이 묘지는 나바테아에서 꽤 권세가 있었던 인물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인자 작품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헤그라에 있는 1만6000제곱미터 규모의 거대한 고고학 단지에도 111개의 고분이 오늘날 알울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맞고 있다.

헤그라 대형 고분군 중 하나인 ‘자발 알-바나트(사진)’에는 여성에게 헌정된 29개의 무덤이 있다. ‘자발 아마르’라는 또 다른 노두(광맥이나 암석의 돌출부)에선 나바테아 여성, 히나의 무덤이 발견됐다.

과거 이곳에 살았던 히나는 자신과 80명의 후손을 위한 무덤을 만들 정도로 부유했다. 발굴 과정에서 사람의 유골과 함께 직물 가죽이 출토돼 나바테아인의 생활상을 보여줬다. 2023년엔 과학자들이 수개월에 걸쳐 히나의 얼굴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 이 얼굴은 헤그라 관광 센터에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오래된 도시

 

나바테아인들이 사라진 후 수세기 동안은 이 계곡에 작은 마을들만 있었다. 그러다 기원후 7세기 무렵 이슬람이 들어왔다. 오아시스는 이슬람 성지 ‘마카’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중간 기착지로 떠올랐고, 정착촌은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게

 

“알울라 올드 타운”

으로 알려진 ‘아드-데라’다. 이 마을은 천 년 전 다단인들과 리흐얀인이 사용했던 돌을 사용해 10세기 무렵에 조성된 정착지다. 이 마을엔 진흙벽돌 집과 상점, 모스크, 광장, 방어 요새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주민들은 1980년대까지 이곳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사우디 정부가 이 지역을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만들겠다며 주민들을 인근의 현대화된 도시 알울라로 이주시켰다.

오늘날 이곳 구시가지엔 버려진 집과 도자기 및 자수 공방, 여행자들이 장인의 수공예품과 알울라 주변 숲에서 자란 대추야자를 구입할 수 있는 상점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알울라가 간직한 비밀들

사우디라는 국가는 한동안 외부인에게 폐쇄적인 곳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알울라의 일부 지역은 예언자 무함마드로부터

 

“저주”

 

를 받아

 

“귀신이 들렸다”

 

는 이야기가 있었다. 때문에 최근까지 사우디를 포함한 모든 무슬림이 이 지역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19년 한 연구팀이 이곳에 번성했던 문명들에 대한 최초의 심층적인 고고학 발굴을 시작했다. 이후 놀라운 발견이 잇따랐고, 이를 통해 아라비아 반도에 남겨진 인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알울라 지역에선 ‘무스타틸(아랍어로 직사각형)’이라고 불리는 신석기 시대 석조 기념물이 1600개 이상 발견됐다. 이를 통해 약 7000년 전에도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21년 고고학 연구에선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이곳 사람들이 개를 길렀다는 증거가 나왔다. 2023년에는 알울라 오아시스 바로 남쪽에서 2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51cm 길이의 세계 최대 선사시대 도끼가 발견되기도 했다.

알울라 고고학 및 문화유산 연구 왕립위원회 책임자인 레베카 푸트는

 

“지난 몇 년간 나온 고고학적 발견으로 우리는 이 지역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고 말했다.

 

“많은 증거들이 알울라 계곡에 있던 마을과 도시가 대단히 역동적이었고, 당시 이 지역 곳곳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기발한 사막 공학

 

알울라에 살았던 고대 인류는 이 메마른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정교한 공학을 만들어냈다. 다단 왕국 시대부터 이곳 사람들은 빗물을 모으는 거대한 물통과 지하 대수층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대형 우물을 만들었다.

초기 이슬람 시대에는 중력과 정확한 경사도 계산을 바탕으로 산기슭에서 들판으로 물을 운반하는 관개수로 시스템 ‘카나트’를 만들었다. 이러한 능숙한 물 관리 덕에 알울라는 대추야자와 시트러스, 무화과, 밀, 보리까지 재배하는 농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오늘날 이곳에는 230만 그루의 대추야자 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이 숲에서 매년 9만 톤 이상의 대추야자가 나온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초록빛 오아시스

알울라의 대추야자는 이 지역 다른 농업의 기반이기도 하다. 수백만 그루의 대추야자 나무 그늘에서 오렌지와 레몬, 자몽, 금귤이 자란다. 나무 아래에선 농부들이 민트와 바질 같은 허브를 재배한다. 미용 및 의학적 효능으로 유명한 모링가 페레그리나 역시 대추야자 나무 인근에서 재배된다.

매년 1월이 되면 이곳에선 ‘알울라 시트러스 축제’가 열린다. 1만5000여 톤 이상의 시트러스를 보기 위해 농부와 쇼핑객, 방문객의 발길이 모이는 자리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자연의 경이로움

알울라 계곡에는 인류가 남긴 놀라운 역사만 있는 게 아니다. 사막 협곡과 사암 절벽, 풍화된 암석, 화산 지형 등 자연의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알울라 오아시스 북동쪽에 있는 1500제곱킬로미터 규모의 ‘샤란 자연 보호구역’에는 누비 아이백스 염소와 가젤, 붉은목 타조, 아라비아 늑대가 살고 있다.

아샤르 계곡(사진)의 거대한 황토 사암 지층은 최근 알울라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곳이다. 이곳의 바위 사이에는 다양한 호텔과 레스토랑, 심지어 콘서트홀이 숨어 있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초현실적인 풍경

 

‘자발 알필(코끼리 바위, 사진)’는 알울라에서 가장 많이 손꼽히는 볼 거리다. 52m 높이로 솟아있는 이 사암 산은 수백만 년간 바람과 물의 침식을 통해 코끼리 모양이 됐다. 헬리콥터를 타고 상공에서 자발 알필을 보면, 2만200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이 계곡이 얼마나 광활한지는 물론 수세기 전 지친 여행자들에게 이 오아시스가 얼마나 반가웠을지를 가늠할 수 있다.

알울라 곳곳엔 기발한 모양의 자연물이 흩어져 있다. 헤그라에선 ‘얼굴 바위’가 석양에 작별을 고한다. 샤란 자연 보호구역에는 들리지 않는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듯한 2개의 사암 구조물 ‘춤추는 바위’가 있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산중에 남겨진 메시지

알울라 지역의 기암괴석과 절벽에는 사냥 장면을 묘사한 신석기 시대 암각화부터 방문객의 침입과 도난을 경고하는 나바테아인 무덤 비문에 이르기까지 5만 개가 넘는 과거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이러한 메시지에서 우리는 알울라에만 국한되지 않는 인류의 옛이야기를 듣게 된다.

 

알울라에서 공인된 스토리텔링 가이드로 활동하는 아티프 알발라위는

 

“우리는 이 계곡에서 역사의 10%밖에 발견하지 못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절벽과 산에서 고대 비문이나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선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알울라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현대 미술 작품은 시간이 만든 작품과 함께 알울라를 시간을 초월한 인간 표현의 박물관으로 만들어 준다.

사진 출처,YULIA DENISYUK

과거를 생각하다

2019년, 알울라 아샤르 계곡에 현대의 신기루가 솟아올랐다. 9740개의 유리 패널을 덮어 주변의 우뚝 솟은 절벽을 비추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거울 건물 ‘마라야’다.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문화 행사와 콘서트, 컨퍼런스 용도로 쓰인다. 고대의 땅 한가운데 자리한 바로 이 건물로 다양한 사람들과 아이디어가 모여드는 교차로다. 그렇게 이곳은 알울라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한다.

 

 

 

  • 기자,율리아 데니슈크
  • 기자,BBC Fe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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