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의 기억, 레분』
『바람 끝의 기억, 레분』작고 낯선 섬.그곳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다.하지만 쿠슈호 캠핑장의 고요함은, 내 마음의 주름까지 펼쳐주는 듯했다.나는 혼자였다. 아스라이 빛바랜 텐트를 치고, 호숫가에 걸터앉았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바람이, 내 오래된 마음의 틈으로 스며들었다.해는 느리게 지고, 구름은 느릿한 꿈처럼 흘렀다.처음엔 적막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이 고요함은 ‘정적’이 아닌, ‘귀 기울일 수 있는 여백’이었다.레분섬 북쪽. 호수에서 조금 걸어가면 넓은 들판이 있다. 그곳에 개불알꽃이 피어 있다.이름은 이상했지만, 그 꽃들은 슬프도록 순했다.거센 바닷바람을 그대로 견디며 살아가는 꽃들. 작고, 여리고, 강한.그곳에 앉아 나는 오랜만에 나 자신을 떠올렸다.누군가를 향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
2025.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