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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쿠바가 지난 2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전격 수교한 지 한달이 훌쩍 지났다.
두 나라 유엔(UN) 대표부는 이날 늦은 밤 철저한 보안 속에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쿠바는 양국의 수교 협의가 공개되는 것을 상당히 민감하게 여겼다고 한다. '사회주의 형제국'인 북한을 의식한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튿날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일본이 관계 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갈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북일 두 나라가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북한의 기존 입장이라 하더라도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러시아와의 밀착 행보를 보이던 북한이 일본에 이어 서방에도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경제난 및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목적일까, 아니면 다른 셈법이 있는 것일까.
올 11월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김 위원장을 두 번이나 만났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는 이 상황에서 북한은 어떤 '수'를 고심하고 있을까.
서방에 빗장 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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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해 8월부터 다시 국경을 열었다. 하지만 외국 외교관의 평양 근무는 중국과 러시아, 몽골, 쿠바 등 친북 국가에만 허용됐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한국-쿠바 수교 직후 유럽 등 서방에 외교의 문을 열겠다는 의지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유엔은 지난 3월 1일 평양주재 상주 조정관을 임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특히 '주재국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이렇게 되면 국제보건기구(WHO)를 비롯해 평양에 상주하던 다른 국제기구 직원들도 머잖아 다시 평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 외무부 대표단도 지난 4년간 비워놨던 공관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으며,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 내정자 역시 북한을 찾았다. 이에 대해 스웨덴 외무부는 자국 외교관의 평양 복귀를 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영국과 스위스, 폴란드, 체코 등도 북한으로의 복귀 의사를 밝혔다.
유럽 등 서방이 독자적으로 평양 복귀를 결정할 수는 없는 만큼, 북한이 이들 국가들과의 외교 정상화를 위해 물밑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관계자는 "한-쿠바 수교 직후 북한이 외교에 급물살을 타고 대외 개방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주영국 북한 공사를 지낸 태영호 의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한국이 공산 국가 중 북한의 마지막 지탱점이었던 쿠바와 수교를 맺었다는 소식에 김정은은 눈앞이 아찔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2020년 초 코로나19를 이유로 북중 국경을 봉쇄했으며, 이에 평양에 상주 공관을 운영하던 영국과 독일, 스웨덴 등 서방 국가들은 물론 국제보건기구(WHO), 유니세프(UNICEF), 세계식량계획(WFP) 등 여러 국제기구 직원들까지 모두 철수했다.
북한의 수교국은 어디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2024년 2월 현재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나라는 모두 159개국이다. 한국은 193개국, 남북한 동시수교국은 157개국으로 북한과만 수교한 나라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두 곳이다. 한국 정부는 쿠바와 마찬가지로 시리아에도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북한이 운영하는 상주대사관과 총영사관, 대표부 등 재외공관은 라오스와 미얀마, 시리아, 멕시코, 베네수엘라, 알제리, 콩고민주공화국 등 44개(40개국)로 확인됐다. 한국은 이보다 4배 가까이 많은 167개(116개국)다.
평양에 자리한 외국 공관의 경우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를 포함해 24개가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주 인력은 대부분 철수했다. 또한 북한과 자국에 쌍방으로 공관을 운영하는 나라는 중국과 쿠바, 스웨덴, 러시아, 몽골, 베트남 등 6개국으로 전해졌다.
최근 북한은 우간다와 앙골라, 스페인, 홍콩, 네팔 등에서 재외공관을 철수했다. 그 배경으로는 경제적 이유가 꼽힌다. 실제 현지 공관들은 북한 당국의 재정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해 파견 외교관들이 직접 공관 운영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호 의원은 자신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를 통해 “자체 외화벌이를 하여 대사관을 운영하고 시설도 보수한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대사관 자체의 생존을 유지해야 한다, 북한은 해외 주재 외교관의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해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정규 전 스웨덴 주재 한국 대사는 BBC에 주스웨덴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외교 여권으로 인근 국가에서 담배 밀수를 수차례 해오다 적발돼 대부분 추방됐으며, 이전에도 인근 국가에서 마약 밀수, 위조여권 문제 등으로 추방되거나 징역을 살았다고 전했다.
'비동맹운동'과 북한
흥미로운 점은 북한이 오랜 비동맹 우방국인 아프리카 우간다와 앙골라에서도 공관을 철수했다는 사실이다. 외교 문제가 아닌 '경제적인 여력'이 없어서 공관을 철수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북한과 비동맹 국가 간 인연은 꽤 깊다. 과거 식민지 독립을 이룬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등 신생 독립국을 중심으로 한 제3세계 국가들은 1961년 ‘비동맹운동’을 결성해 반미, 반제국주의, 반식민지주의를 표방했다. 더불어 모든 형태의 외국 침략, 점령, 지배, 간섭, 패권과의 투쟁을 외치며 독립과 주권, 안보 보장 등을 주장했다.
쉽게 말해 ‘비동맹운동’은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주요 강대국 열강에 공식적으로 속하지 않거나 이에 대항하는 국가들이 모인 조직이다. 그 당시 독자 노선을 천명한 북한 역시 1975년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북한연구소장을 지낸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BBC에 “김일성 정권의 외교는 그 자체로 비동맹의 리더국 혹은 최고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열정이 강했다”며 “한국이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북한은 비동맹 세력 확장에서 앞서 나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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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한은 비동맹 21개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를 통해 반미 연대 형성, 주한미군 철수 지지 등을 이끌어내려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김일성 주석은 1986년 6월 20일 “쁠럭불가담운동은 본질에 있어 반제자주화운동" 이라며 “비동맹국가들이 미국 등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데서 일치한 보조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BBC에 “당시 유엔에서 매년 남북한 '표 대결’이 열렸다”며 “몇 대 몇으로 누가 이겼는지가 상당한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유엔 회원국이기도 한 비동맹 국가들이 북한에 표를 주느냐, 한국에 표를 주느냐에 따라 결의안 채택 여부가 갈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 남북한 체제 경쟁 및 외교 전쟁은 치열했다.
태영호 의원은 “1990년 소련에 이어 91년 중국까지 연이어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키로 결정하면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더욱 심화됐다”며 “한국의 단독 유엔 가입이 두려웠던 김정일이 어쩔 수 없이 노발대발 하는 아버지 김일성을 설득해 1991년 5월 27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했다.
남북 외교 경쟁은 1980년대 극에 달했고 결국 북한의 테러로 이어졌다. 북한은 88서울올림픽 개최를 막기 위해 다양한 외교 공작을 펼쳤다. 태영호 의원은 자신의 책에서 “아무리 남조선이 밉고 서울올림픽에 배가 아프다고 해도 어떻게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일 수 있는가… 서울올림픽을 파탄 내려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지’ 하고 당의 사업을 합리화했다”라고 적었다. 여기서 무고한 사람들이란 KAL기 폭파 사건과 아웅산 테러의 희생자들을 말한다.
그리고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이듬해인 1989년 평양 세계학생축전을 개최했다. 한국에서는 ‘임수경방북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학생축전은 여러 사회주의 국가의 청년 및 학생들이 반제, 반전 기치 아래 모여 친선과 단결을 도모하는 행사로 당시 평양에는 177개국, 2만2000여명이 집결했다.
한편 1970~80년대 세력을 확장해가던 비동맹 운동은 냉전 이후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지면서 그 의미가 대거 퇴색했다. 비동맹 운동을 탈퇴하고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나라들도 있다. 끈끈했던 북한과의 관계 역시 시들해졌다.
정영태 교수는 “외교도 결국 경제력”이라며 “1970~80년대엔 북한이 초청 외교 등 제3세계 국가를 많이 지원했지만 지금은 북한 자체가 워낙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비동맹 국가들과의 관계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동맹 운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북한은 올 1월 우간다 캄팔레에서 열린 제19차 비동맹 운동 정상회의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했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 자리에서 “서방 중심의 현 국제경제 질서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남수단과 서사하라를 제외한 아프리카의 모든 국가들은 비동맹 운동 가입국이다.
북러 밀착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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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국제사회의 관심이 러시아에 집중됐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북한의 탄약과 탄도 미사일을 공급 받기 시작했고 실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러시아와 북한은 '근거없는 모함'이라며 극구 부인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군 정찰위성 개발 등에 주력하던 북한은 이렇듯 지난해부터 유독 러시아와의 밀착을 과시하고 있다.
미라 랩 후퍼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2월 15일 미국평화재단 주최 인도태평양 전략 2주년 세미나에 참석해 “러시아는 북한에 줄 수 있는 것이 많다"며 우려를 표했다.
카밀 도슨 국무부 동아시아 부차관보 역시 “북한 이슈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북한이 러시아와 강력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올해 2월 24일 “유엔 안보리 결의들을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북한의 탄약 및 탄도미사일 수출과 러시아의 북한 탄도미사일 조달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제 5선 푸틴 대통령이 과연 언제 방북할 지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이반 젤로홉체프 러시아 외무부 제1 아주국장은 앞서 2월 11일 북러 양국이 외교 채널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방북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상황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 당장이야 러시아가 전쟁을 치르는 입장에서 탄약이 아쉬워 북한에게 정성을 쏟고는 있지만 전후 복구 및 재건, 경제 회복 등의 과제를 떠안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선택은 결국 북한이 아닌 한국과 일본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BBC에 “전쟁이 길어지니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도 만나고 자동차도 선물하는 것”이라며 “푸틴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2022년 기준 한러 교역액이 262억 달러인 반면 북한과는 5만 달러에 불과했고 코로나 이전에도 북러 교역액은 최대 1억 달러를 넘긴 적이 없다”면서 “전쟁 후 경제를 살려야 하는 푸틴에게 가난한 북한은 부담만 될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쿠바가 결국 한국과 수교한 이유도 마찬가지”라며 “쿠바 경제가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2국가론’을 선언하자마자 한국의 손을 덥석 잡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쟁으로 유럽과의 관계가 파탄난 만큼 향후 러시아의 주력은 극동개발 및 신동방정책, 즉 에너지와 교통망,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이고 그 고객은 당연히 한국과 일본”이라며 “러시아 역시 쿠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조 연구위원은 내다봤다.
김진무 전 숙명여대 교수 역시 “러시아가 단지 북한을 자국 이익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원하는 첨단기술을 지원할 생각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도 미국,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 군사력을 강화시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도 북한처럼 완전히 고립되어 있고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을 잘만 컨트롤하면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했을 때 미국에 대한 협상 카드로 쓸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할 것”이라면서 “러시아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꽤 높기 때문에 한러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게 바로 북러 밀착 속에서도 러시아가 한국에 유화적인 이유”라고 판단했다.
실제로도 이반 젤로홉체프 러시아 외무부 제1 아주국장은 지난 2월 11일 "한러 관계가 몇년 전만 해도 특히 경제 분야에서 건설적인 방식으로 발전했지만, 한미동맹 탓에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러 외무부 차관급 회담을 언급하며 "유사한 이해를 확인한 만큼 한국 파트너들과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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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원하는 것은 트럼프 재선?
인터뷰에 응한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점이 있다. 바로 눈앞의 현상이 아닌,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올해 11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두번째 임기를 맞게 될지 아니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벌써부터 미국 전역이 들썩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랄까, 아니 더 솔직하게 둘 중 어느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줄까.
이쯤에서 지난 2018~20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당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4월 4.27 판문점 선언을 시작으로 같은 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3개월 뒤인 9월 9.19 평양공동선언 그리고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차례로 개최됐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물꼬가 트이자 남북, 북미, 남북미 정상간의 만남은 꽤나 순조로웠다.
그렇다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첫 물꼬가 트이기 이전 분위기는 어땠을까. 태영호 의원은 “2018년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의 시기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이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은 이런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실제 2018년 초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고 개막식에는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해 전 세계의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귀빈석 앞줄에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 부부가, 그 뒷줄에 김여정 부부장, 김영남 위원장이 한데 모여 앉아있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펜스 전 부통령은 2022년 11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개막식 때 뒷줄 바로 오른쪽에 앉아있던 김여정을 무시했다”면서 “나는 김여정이 수천, 수만 명의 시민을 죽이고 억압한 정권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김영남 등과의 만남을 권유했지만 이를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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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북한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이 있기 두 달 전 한국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 전격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김진무 교수는 “북한은 이익이 없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당시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사이에 다리를 놔주겠다고 북측에 제안을 했고 이에 제재로 힘겹던 북한이 움직였던 것인데, 결국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관계 역시 단절됐다”고 지적했다.
그 당시 북한이 한국에 긍정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위한 '빌드업'이었고 올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서방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이는 것 역시 같은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장은 BBC에 “지금 북한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미국 대선, 다시 말해 트럼프의 재선을 기다리는 것”이라며 “그러면서 국제관계 확산 등을 통해 정상국가,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왜? 그게 북한의 기본 노선이니까”라고 말했다.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정상 간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탑다운' 방식을 선호한다. 지난 2019년 6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트위터) 제안으로 이튿날 남북미 정상의 사상 첫 판문점 회동이 이뤄졌는데 이는 그의 '통 큰'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밑에서부터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바텀업'식 실무협상을 중시한다. 하지만 북한 체제 특성상 실무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모든 결정은 오로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만이 가능하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전을 보이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021년 “본질적으로 미국 대북정책의 목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향하는 단계적 진전을 위한 외교적 관여에 준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정 박 미 국무부 대북 고위관리 역시 지난 3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여전히 우리(미국)의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진무 교수는 “지난해 미사일을 빵빵 쏘며 긴장을 조성하던 북한이 이제 와서 일본, 유럽 등에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이런 식의 평화 분위기 조성이 결국 트럼프의 당선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런 식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 트럼프가 이를 대선 캠페인에 활용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의 대규모 유세 현장에서 "북한은 지금 전쟁할 준비가 돼 있는 거대한 핵보유국"이라며 "우리는 좋았었다. 나는 김정은과 잘 지냈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이 김정은 위원장이 '통 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원한다고 진단하는 이유다.
- 한상미
- 기자,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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