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GETTY IMAGES
의류 가게 매니저였던 모하메드 아스판은 가족들의 꿈과 희망을 품고 인도 남부의 하이데라바드를 떠나 러시아로 향했다.
아스판은 자신이 그저 '군의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되리라 믿었다. 어느 날 아스판은 유튜브에서 월 10만인도루피(약 162만원)에 달하는 고임금 일자리를 약속하는 게시물을 보게 됐다. 6개월 뒤면 영주권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스판의 형제 임란은 BBC 펀자브어와의 인터뷰에서 “아스판은 자신이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이 아닌, 육군 본부의 일을 도우며 돈을 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아스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은 현재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있으며, 여권은 압수당했고, 전투에 투입될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그렇게 2달이 넘도록 임란은 아스판으로부터 그 어떠한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러시아 주재 인도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아스판의 소식을 묻자, 대사관 측은 그가 사망했다고 했다. 임란은 “아스판이 죽었다면 최소한 시신이라도 이곳으로 즉시 데려와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스판의 아내 모두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아스판의 아내와 2살도 안 된 어린 두 자녀는 그렇게 남겨졌다.한편 가족들에 따르면 군대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며 러시아로 건너갔으나, 최근 전선으로 끌려가 전투 중 사망한 인도 남성이 최소 2명에 달한다고 한다. 자수로 생계를 이어가던 헤밀 만기야(23) 또한 지난해 12월, 유사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유인돼 러시아로 향했다.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출신인 그의 아버지 아슈윈은 “아들은 내게 자신이 군에서 도우미로 일하게 될 것이며, 3개월간 훈련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하지만 막상 러시아에 도착한 아들은 자신이 전투를 위한 훈련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대규모 인신매매 네트워크'
인도 당국은 최근 일자리를 주겠다고 유인해 청년들을 러시아로 데려가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내모는 ‘대규모 인신매매 네트워크’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인도 ‘중앙 수사국’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로 보내진 남성은 약 35명이다.인도 외교부는 속아서 전쟁터로 끌려간 인도인들 관련 모든 사례에 대해 러시아 당국과 “강력하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한편 SNS엔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 여러 건이 유포되고 있다, 그중 이번 달 공유된 한 영상엔 남성 7명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관광 비자를 통해 러시아에 방문했으나, 현재 러시아 군 복무를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인도 정부에 자신들이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가간딥 싱은 이렇게 호소하는 영상 속 남성 중 하나다.
싱의 어머니 발윈더 카우어에 따르면 싱은 러시아 군에서 복무하지 않으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게 될 처지라고 한다.카우어는 BBC 펀자브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들은 밤늦게까지 싱의 메시지 혹은 전화를 기다린다”면서 “싱은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최전방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 걱정된다”고 했다.펀자브주 내 다른 가족들 또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들들이 사기에 휘말려 관광 비자로 두바이 혹은 벨라루스에 간 다음, 러시아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이 가족들은 아들들이 고액 임금을 약속한 요원들에게 어떻게 속아 전쟁터로 보내지게 된 과정을 설명한 영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고국에서 툭툭 운전사 혹은 짜이 판매원으로 일하던 이들이 대부분이다.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따르면 이러한 요원들은 몇 달간 군 복무만 하면 러시아 여권을 받을 수 있다며 피해 남성들에게 여행 경비로 30만루피(약 480만원)를 요구했다고 한다.
'외국인 최소 254명 사망'
앞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측 사상자를 35만 명대로 추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망자 및 부상자 수는 밝히지 않았다.BBC 러시아어 뉴스는 러시아 군인 6678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 군이 왜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을 끌어들이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지난 2022년, 러시아 당국은 국방부와 1년 이상 계약을 체결하고, 6개월 이상 군에서 복무한 외국인의 경우 거주 허가증이 없거나 지난 5년간 러시아에 거주하지 않았어도 러시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그리고 올해 1월, 푸틴 대통령은 관련 절차를 더욱 간소화하는 새로운 법령에 서명했다.외국인 용병의 경우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온 이들이 대부분이다.러시아의 외국인 용병들의 국적으로는 쿠바, 네팔, 인도, 시리아, 이라크, 세르비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들은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BBC 러시아어 뉴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까지 러시아를 위해 싸우다 사망한 외국인 용병은 최소 254명이다.지난해 12월, 네팔 당국은 자국 출신 용병 6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중 사망하자, 러시아 측에 자국 출신 용병들을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했다.네팔 경찰 당국에 따르면 브로커들은 관광비자로 이들을 러시아에 입국시켜주는 대가로 1인당 최대 9000달러(약 1200만원)를 요구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GOVERNOR OF MURMANSK/TELEGRAM
BBC 러시아어 뉴스는 비자가 만료돼 러시아에 구금된 이민자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민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11월 러시아 내 핀란드 국경 지역에 구금됐던 이민자들은 구금 며칠 만에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군사 시설로 이송됐다.아와드(가명)는 소말리아 출신의 40대 남성이다.아와드는 지난해 11월 중순에 체포돼 벌금 2000루블을 선고받는 한편 추방되기 전까지 구금 시설에 머무르게 됐다. 불법 체류자 체포 시 일반적인 절차다.그런데 아와드에 따르면 당시 자신을 포함한 수감자 십여 명에게 군 관계자가 접근해왔다고 한다.군 관계자들은 이들에게 “국가를 위한 일자리”를 제안했다.아와드는 자신이 이들에게 속아 러시아 군에 입대하게 됐다는 주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또한 자신은 군 관계자들의 제안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는 설명이다.“나는 싫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서명한 내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내가 아는 언어로 쓰여 있지도 않았다”는 아와드는 “나는 망명 신청자이지, 군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우리에게 1년간의 계약 기간 동안 훈련도 받고, 넉넉한 급여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며,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 끌려가 전쟁에 나가는 일은 없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들은 모든 게 거짓말이었습니다.”아와드와 다른 남성들은 버스에 실려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군 수용소로 이송됐다. 계속 항의한 끝에 적어도 이주민 1명은 추방됐으며, 아와드는 현재 러시아에서 망명을 신청한 상태다.아와드는 아직도 추방을 기다리고 있으나, 청문회 날짜는 정해진 바 없다.BBC는 구금된 외국인들에게 접근해 석방해주는 대가로 군과 계약하라는 ‘제안’이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러시아 내무부에 의견을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기사 관련 정보
- 기자,구르프리트 싱 차울라 & 발라 사티시 & 올레그 볼디레프
- 기자,BBC 펀자브어, 텔루구어, 러시아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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