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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소식/가치 있는 이슈

'독성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어떨까?

by 신기황 2024.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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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GETTY IMAGES

"부모님은 저를 우울하게 만드셨어요. 저는 거의 매일 울었죠. 그래서 차라리 부모님을 무시하기로 했어요."

딸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그 딸이 엄마가 된 직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하지만 사리카는 부모의 “독성(toxic) 행동”이 오랜 기간 정신을 무너뜨린 뒤에야 그 관계를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사리카(30)는 “특히 임신 중에 큰 영향을 받았다. 뱃속의 아기도 내 울음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BBC에 전했다.사리카는 부모와의 만남을 피하고 있다. 양친 모두와 거리를 두는 결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항상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리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너무도 많다.

케냐 출신의 애슐리(25)는 “내 아버지는 분명히 나르시시스트다. 아버지는 한 번도 학교에 온 적이 없다. 심지어 졸업식에도 안 왔다. 항상 핑계가 있었다"고 말한다.

애슐리는 아버지가 중요한 순간에는 곁에 없으면서 거의 모든 부분에서 트집만 잡았다고 털어놓았다.

 

BBC와의 인터뷰에서는 “아버지의 독성 행동에서 나를 보호해준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최선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두 분의 결혼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어머니는 이혼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문화권에서 바라보는 이혼과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이혼은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제 아버지께 걸려오는 전화는 주로 제가 취직했는지, 그래서 아버지께 뭘 사드릴 수 있는지 묻는 전화예요.”

사진 설명, 전문가들은 "독성 부모"가 성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애슐리와 사리카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지만, 공통점이 많다.

두 여성에 따르면, 부모님이 꼭 필요한 순간에는 도와주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자녀를 통제하려 하고, 진로·사회생활·인간관계·결혼에 대한 결정에 끊임없이 간섭했다.틱톡이나 기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는 부모와 연락을 끊는 방법을 설명하는 영상이 많다. 이런 영상을 올린 사람들은 부모의 “독성 행동”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영국 상담심리치료협회(BACP)에 등록된 심리치료사 아요 아데시오예는 “독성 부모에게 피해를 입고 전문적인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은 그냥 흔한 수준이 아니라 흘러 넘치는 수준”이라고 강조한다.독성 부모’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려온다. 정확히 무슨 의미로 사용되는 걸까?

‘독성 부모'란?

유엔(UN) 아동기구 유니세프에 따르면 “긍정적인 양육은 방법, 규칙, 스타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념이자 삶의 방식”으로, “모든 아동은 존중받아야 하며,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끼지 말아야 하고, 사랑이 담긴 격려로 양육돼야 한다”고 한다.독성 부모”에 대한 공식 정의는 없지만, ‘긍정적인 양육’에 반하는 일련의 부정적 특성을 포괄하는 용어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일반적으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 패턴이 나타날 때 유해하다고 분류합니다.”예를 들어, 자녀에게 파트너가 있는지 묻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 질문이 통제나 학대로 이어지는 행동 패턴의 일부라면, 더 심각한 질문이 될 수 있다.아데시오예는 가정폭력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갖고 있다. 그는 “부모의 자기 인식, 지식, 교육이 부족한 탓에 스스로 뭘 하는지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 UCLA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고콜레스테롤·고혈압·당뇨병과 같은 특정 질병에 시달릴 확률이 더 높았다.

통제형, 자기애형, 기타 유형

아데시오예는 상담실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독성 양육’의 두 가지 유형을 설명했다. 먼저, 비현실적인 기대와 기준을 설정하여 자녀의 학업, 직장생활, 인간관계에 간섭하는 통제형 부모가 있다. 또한, 자녀가 아니라 부모 본인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기애형 부모도 있다. 아데시오예는 두 유형의 특성이 겹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한다.

한편,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 알리슨 코너는 ‘독성 부모’의 유형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사진 설명, 전문가들에 따르면 많은 부모가 특히 결혼 생활이 파탄나거나 불륜이 있는 경우 자녀에게 정서적 의존을 추구한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알리슨 코너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은퇴한 뒤 웹사이트 myhorridparent.com 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독성 부모로 인해 고통받는 자녀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독성 부모’의 다른 유형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위압형 엄마 - 자녀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자녀와 관련된 결정을 내림

· 분노형 엄마 -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녀의 결점을 찾음 (그리고 자녀에게 알려줌)

· 선망형 엄마 - 본인의 삶에서 결핍된 부분을 자녀를 통해 충족하려 함

· 경쟁형 아빠 - 본인보다 자녀가 우수한 모든 부분을 트집잡고 비난함

· 분노형 아빠 - 화를 잘 내고 공격적이며, 사소한 일에도 이성을 잃음

· 수동형 아빠 - 모든 결정과 책임을 아내에게 맡김

알리슨 코너는 전 세계에서 “가슴 아프고 비극적인 사연”이 접수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국제적인 자살방지 상담 창구를 제공해 피해자를 돕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까지 상황이 나쁠 수 있다”고 BBC에 말했다.

 

사진 설명, 많은 사람들이 독성 부모와의 관계를 끊는 것에 대한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문화적 금기

사리카는 가족과 가까운 외부인, 즉 “비난하지 않을 사람”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려 했지만 결국 모두가 그를 비난했다고 한다. 또한 “우리 문화는 부모가 항상 옳고 자녀가 틀리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는 말도 한다”고 덧붙였다. 홍콩대학 사회학 전문가 셰리스 슌칭 찬 교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도 이 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 부모가 달리 의지할 사람이 없다보니 자녀에게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마도 부모는 실제로 그 자녀를 위해 큰 희생을 하고 모든 것을 바쳤을 것이며, 그 결과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더 큰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한편, 찬 교수는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며, 특히 부모의 결혼 생활이 파탄났거나 아버지가 외도를 한 경우 항상 자녀에게 걱정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또한 일종의 독성 양육이라고 생각하며, 자녀가 이에 대해 솔직히 말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어떤 자녀들은 어머니의 상담사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진 설명, "저는 부모님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제 딸에게 든든한 부모가 되고 싶어요."

사진 출처,GETTY IMAGES

 

아요 아데시오예에 따르면, 독성 양육으로 인해 성인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장기적 영향으로 자존감 하락, 만성적 죄책감, 가혹한 자기 비판, 자기 연민의 부족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욕구를 느끼고,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하고, 인간관계에서 안정을 느끼지 못하는 문제 등을 경험한다.

 

독성 부모를 대하는 방법

사리카는 결혼 후 부모님과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는데 부모님에게 결혼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부모님은 분명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셨다. 나는 부모님께 해드린 게 없다. 아버지는 ‘넌 우리 집안의 수치’라고 자주 말하셨다. 어느 순간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임상 심리학자로서 영국에서 아동·청소년을 심리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이노베이팅 마인드(Innovating Minds)’를 설립한 아샤 파텔 박사는 독성 부모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정상이지만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파텔 박사는 “다른 누구도 여러분의 정신 건강을 돌봐주지 않는다”며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라고 말했다. 아요 아데시오예의 의견에 따르면, 성인 자녀는 부모와의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명확한 경계를 설정해야 하며,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그 점을 놓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자신이 어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죠.”애슐리는 이 조언에 따라 아버지와의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정신 건강을 우선시하기로 결정했다. 사리카는 이제 갓 태어난 딸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그는 “부모님처럼 되고 싶지 않다. 딸의 버팀목이 되면서 최선을 다하고, 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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