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쉽시다
대형마트 일요휴무 역행 등으로
휴일 불규칙한데다 건강까지 악화
“엄마, 일요일에 회사 가? 같이 놀면 안 돼?”
20년째 공항 면세점에서 일하는 ㄱ씨의 아들은 엄마의 근무일정 확인이 습관이다. 주말 아침이면 4살·6살 아들들은 귀신같이 일어나 ‘출근하지 말라’고 붙잡는다. ㄱ씨는 “주말 육아는 온전히 남편 몫이라 남편 불만도 크다. 지금도 동료들 배려로 남들보다 주말 근무가 적어 눈치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한겨레와 만난 ㄱ씨는 일상적 주말 근무와 들쭉날쭉한 근무 스케줄로 “퇴사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는’ 유통·관광업 노동자들의 일·생활 균형 만족도는 크게 떨어지고, 주말 근무가 많을수록 갈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국가비상사태’(윤석열 대통령)라며 정부는 출생률 제고를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노동시간 축소는커녕 주말 근무조차 줄일 수 없는 ㄱ씨에겐 먼 나라 얘기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 소비자 편익을 명분으로 이들 노동자에게 주말 노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 없어 가족도 없다”
24일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이 주말 근무가 많은 유통(2516명), 관광·레저(205명) 업종 조합원 272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주말 구분 없이 근무일정이 불규칙한 이들 노동자의 일·생활 양립 만족도는 낮았다.
설문조사에서 “직장생활과 가족(개인)생활이 충돌해 갈등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0.1%였다. 주말 근무 횟수로 따지면, 주말 근무가 5번 이상일 때는 42.7%가, 4번 이하일 때는 31.2%가 갈등이 있었다. 이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 업종 노동자 2만2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서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율 33.4%보다 높은 수치다.
이들의 근무표는 일·생활 균형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한겨레가 확보한 마트·백화점 노동자 2명의 지난 5월 근무표를 보면, 주말 휴일은 사흘뿐이었다. 나머지 5∼6개 휴일은 평일인데 어떤 규칙도 찾을 수 없었다. 설문조사에서 근무 스케줄은 관리자가 짠 다음 노동자에게 통보하는 경우가 대부분(66.3%)이었다. 스케줄 통보는 보통 한달 이내(88.4%)에 이뤄지는데, 이 가운데 이틀 전 통보도 12.1%나 됐다.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서비스산업 대부분 인력 부족을 겪고 있어, 교대제 근무로 짤 수도 없고 노동자들이 원하는 날 전부 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생활 균형을 위해 ‘유연근로제’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들의 근무일정은 회사에만 유연했다.
들쭉날쭉한 ‘휴일’은 그저 집에 머무르는 ‘쉼’일 뿐이었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23년째 일하고 있는 ㄴ씨는 “쉴 때 보통 집안일 하거나 티브이(TV)를 보면서 집에 있는다”며 “매달, 매주 쉬는 날이 달라 뭘 배우려고 수업을 듣기도 쉽지 않다. 평일엔 나 말고 쉬는 사람이 없으니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고 했다. 설문조사에서 쉬는 날 주로 하는 활동(복수응답) 질문에 대해 ‘티브이, 넷플릭스, 유튜브 등을 본다’(53.1%), ‘수면 등 휴식’(51.6%) 등이 주였다. 이어 ‘가사일 및 가족 돌봄’(46.7%), ‘친구 만남 등 사교’(27.5%), ‘운동’(18.7%), ‘여행’(15.7%) 등의 순이었다.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 근무가 월 5회 이상인 응답자 18.3%는 중등도 이상 우울 증상을 겪고 있었고, 66.2%는 수면 장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월 4회 이하는 각각 12.5%, 58.7%였다. 그렇다고 급여로 보상받는 것도 아니다. 근로기준법상 휴일근무는 50% 가산수당이 있지만, 휴일근로를 시키기 전에 대체휴일을 정하기로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했다면 가산수당은 없다. 서비스업은 대부분 ‘대휴’(대체휴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조사를 진행한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주말 근무가 많을수록 일과 삶 균형이 무너지고 나아가 신체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치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퇴보하는 주말 휴식권
대형마트에 매달 두번 있는 ‘일요일 의무휴업일’이 사라지고 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대형마트는 한달에 두번 의무적으로 쉬어야 하는데, 당시 휴업일 지정 권한이 있던 지방자치단체들은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규제개혁’ 명분으로 이를 흔들었고, 지자체들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고 있다. 지난해 대구시를 시작으로 충북 청주시, 서울 동대문구·서초구, 부산시 등에서 대형마트의 일요일 휴업이 사라지고 있다. 윤 정부 들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평일로 변경된 기초자치단체만 14곳이다.
경영계는 평일 의무휴업일을 두고 “지역 소비자 81%, 만족”(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 설문조사), “소비자 76%,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폐지·완화해야”(지난 1월 한국경제인협회 설문조사) 등 소비자 편익을 강조한다. 그 사이 노동자들의 삶은 나빠졌다. 지난 1월 서비스연맹이 의무휴업일이 평일로 바뀐 청주시 대형마트 노동자 3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변경 전 부정 응답은 70%였는데 바뀐 뒤에는 96%로 치솟았다. 서울 동대문구 대형마트에서 10년째 일하는 ㄷ씨는 “(일요일) 의무휴업이 있을 때는 그래도 가족과 밥도 먹고 친구도 만나면서 보통 사람 같았다”며 “주말엔 혼자 사는 엄마에게 들러 반찬도 하고 집안일도 했는데 (주말에 쉬지 못하면서) 못 본 지 한달이 넘었다. 주위 동료들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의 일·생활 균형을 위한 보편적인 주말 휴식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혜진 강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일요일 의무휴업 폐지 움직임은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일·가정 양립과 배치된다”며 “일요일 휴업으로 다소 불편이 있더라도 일하는 사람 모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해 그 정도 불편은 수용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ㄴ씨의 11살 아들은 “엄마가 주말에 일하러 나가면 속상하다”며 “주말엔 빨리 저녁이 되면 좋겠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평일 말고 (엄마가) 일요일에 쉬었으면 좋겠다”며 “엄마·아빠랑 여행도 가고, 캠핑하고, 자전거 타고, 한강도 가고 싶다”고 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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