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소 잔혹한 사진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국 런던 시민들은 2014년부터 4년 동안 고양이가 머리 등이 잘린 채 사체로 발견되는 엽기적인 사건으로 공포에 떨었다. ‘크로이든 캣 킬러’란 가공의 연쇄 살인범이 400여 마리에 이른 고양이 죽음의 배후에 놓여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2018년 런던 경찰 당국은 3년 동안 조사한 끝에 “연쇄 살인범이 죽였다고 의심받은 고양이의 대부분은 자동차에 친 뒤 여우가 사체를 먹으며 머리와 꼬리를 잘라낸 것으로 추정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여우가 고양이 사체의 일부를 물고 가는 모습이 찍힌 3건의 시시티브이 영상과 사람의 흔적이 없다는 부검결과도 공개했다. 그러나 고양이 살해범이 따로 없다는 결론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반대청원을 벌여 2만명이 서명하는 등 논란은 계속됐다.
경찰의 수사결과를 뒷받침하는 수의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왕립수의대 연구자들은 14일 과학저널 ‘수의 병리학’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일련의 고양이 사체 절단 사고의 원인은 사람이 아니라 도시에 서식하던 여우라고 밝혔다. 런던에는 약 1만 마리의 여우가 살며 차에 치여 죽는 고양이도 연간 1500여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2016∼2018년 사이 시민들이 경찰에 가져온 32구의 절단된 고양이 사체를 대상으로 디엔에이 검사, 단층 촬영, 부검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 “절단된 고양이 사체에서 여우의 디엔에이와 고양이 사체에 남겨진 청소동물의 송곳니 자국을 확인했지만 사람은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고양이 사체의 상태를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머리와 꼬리 등이 절단된 것은 청소동물이 사체를 먹은 결과로 보았다. 죽은 양을 여우가 먹고 난 상태가 이와 비슷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규명이 가능했던 고양이 26마리의 사인을 추정했는데 10마리는 여우가 포식했고 8마리는 심혈관계 이상으로 사망했으며 6마리는 차량 충돌 나머지 2마리는 각각 차량 부동액 중독과 간 이상으로 나타났다.
교신저자인 헨리 마르티노 왕립수의대 수의 법의 병리학 과장은 “사람은 데이터에서 원하는 것만 골라내는 경향이 있다”며 “캣 킬러 이야기는 그런 단적인 예”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확증편향을 극복하는 것이 과학이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크로이든 캣 킬러’ 사태는 2014년부터 런던 남부 크로이든 지역에서 잇달아 머리 등이 절단된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런던 순환고속도로를 따라 비슷한 유형의 사체가 발견됐고 맨체스터 등 인근 도시로 확산했다.
지역 동물보호단체 주도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타고 우려가 퍼져나갔다. 동물 학대범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제기됐고 실제로 수사팀은 “범인이 여성과의 문제 때문에 여성과 연관이 있는 고양이를 표적으로 삼았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 ‘캣 킬러’ 파동은 대중의 공포와 분노가 언론보도와 맞물리면서 증폭돼 당국의 수사로 이어진 ‘모럴 패닉’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리처드 워드 영국 엑시터대 범죄역사학자는 2018년 수사결과가 발표되기 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일탈 행동에 대한 초기의 우려가 특정인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고 언론보도로 이것이 강화하면 수사팀 구성 같은 균형이 맞지 않는 조처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인용 논문: Veterinary Pathology, DOI: 10.1177/0300985821105266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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