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마일 깊이 해저에 있는 타이타닉 잔해에서 부식과 붕괴의 흔적이 뚜렷하게 포착됐다. 타이타닉은 어떤 최후를 맞게 될까?
RMS 타이타닉은 112년이 넘는 세월을 칠흑 같은 심해의 어둠 속에서 보냈다. 269m 길이의 이 배는 1912년 4월, 달도 보이지 않던 서늘한 밤에 침몰했다. 잔해는 해저로 가라앉았고, 파편은 3.8km까지 퍼졌다. 그리고 승객과 승무원 1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심해 잠수정과 인양 작전 장비가 가끔씩 잔해 더미로 가서 작은 유물을 건져왔다. 그 사이 타이타닉은 서서히 낡아갔다.
뉴펀들랜드 해안에서 남동쪽으로 약 640km 떨어진 곳에 있는 타이타닉 잔해를 가장 최근에 촬영한 자료를 보면 부식의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85년 난파 잔해 발견 이후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난 뱃머리 난간은 그 동안 타이타닉을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2022년에 난파선을 촬영한 자료에서는 난간의 흔들림이 포착됐고, 가장 최근인 2024년 자료를 보면 난간 대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자료는 심해의 극한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난파선의 잔해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타이타닉은 바다의 수압과 해저 해류, 철을 먹는 박테리아로 인해 붕괴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변 해양 서식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수압에 눌리다
타이타닉의 쪼개진 선수와 선미는 서로 약 600m 거리를 둔 채 물 속에 가라앉았다. 당시 선미는 바로 가라앉았고, 선수는 좀 더 천천히 가라앉았다.
배에서 떨어져나간 소지품과 부속품, 고정물, 석탄, 선박 부품 등은 선미 뒤쪽을 기준으로 약 2km 이상 흩어져 있다. 선미 쪽에는 강철이 뒤엉킨 잔해들이 주로 남은 반면, 선수는 거의 온전한 모습이다. 그 차이가 만들어진 이유는 공기다. 배가 빙산에 부딪혀 쪼개졌을 때 뱃머리에는 약 4만3000톤의 물이 밀려들었다. 반면 선미에는 공기가 채워진 구역(에어포켓)이 일부 남아 있었다. 이 상태에서 배가 회전하며 물속으로 가라앉자, 수압이 급속히 높아졌다. 수압이 급속히 커지자, 에어포켓 주변 구조물이 폭발했다. 금속덩어리와 조각상, 샴페인 병, 승객 소지품 등이 주변으로 날아갈 정도로 거센 폭발이었다.
해저에 있는 타이타닉은 수면보다 390배나 높은 약 40MPa(메가파스칼)의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배 안에는 에어포켓이 없어서, 더 이상의 치명적인 폭발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폭발은 없지만, 배 자체의 무게가 잔해의 붕괴를 부채질하고 있다. 5만2000톤의 강철이 해저로 가라앉으면서 선체 전체에 비틀림이 일어났고, 이 비틀림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선체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몇 차례의 잠수 탐사에 따르면, 타이타닉 선체 철판에는 커다란 균열이 생겼고 갑판 부분은 안쪽으로 무너지고 있다.
2022년 심해 탐사 기업 ‘마젤란’과 함께 타이타닉 잔해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한 심해 해양 고고학자 게르하르트 세이퍼트는 “시간이 흐를 수록 난파선의 상징적인 실루엣은 서서히 달라질 것인데, 그 방향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마젤란과 함께 탐사했던 2022년에는 제자리에 있었던 난간이 떨어지거나 몇 년 전 선장 화장실의 천장이 무너진 것이 그 예시입니다.”
세이퍼트는 또 부식 현상 때문에 강판과 빔, 다른 하중 지지 요소가 얇아지면서 선박 구조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고 했다.
박테리아가 먹어치우다
다른 철제 구조물처럼 타이타닉도 녹이 슬고 있다. 하지만 3.8km 깊이 바다 속에서 녹이 스는 방식은 산소와 물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산화철을 생성하는 육지와는 다르다. 타이타닉에서는 주로 박테리아 때문에 부식이 일어난다.
타이타닉 잔해는 박테리아와 해저 곰팡이, 여러 미생물 등이 섞인 생물막으로 덮여 있다. 이들에게는 난파 잔해가 먹이다. 이 미생물들은 원래는 바다 속을 떠다니는데, 실내 장식과 베개, 수건, 가구처럼 영양분이 풍부한 유기 물질을 발견한 뒤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더 극단적인 미생물도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 미생물은 난파선이 해저로 파고들 때 해저에서 타이타닉으로 옮겨왔거나, 대서양 중부의 열수분출공에서 흘러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철을 산화시키는 박테리아와 산을 생성하는 다른 박테리아로 타이타닉의 금속 표면을 먹어 치운다. 또한 이들이 만든 녹을 먹는 미생물도 이곳에서 확인됐다.
타이타닉을 탐사한 연구팀에 따르면, 타이타닉은 산화된 금속 구조물에 고드름처럼 매달린 ‘러스티클’로 덮여 있다. 러스티클에는 서로 협력과 경쟁을 하는 미생물들이 모여 있다. 1991년 아카데믹 므스티슬라브 켈디쉬 탐험대는 잔해에서 러스티클 하나를 떼어내 밀폐 용기에 담아 육지로 가져왔다.
러스티클 연구 결과, 당시 과학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박테리아 종도 확인됐다. 나중에 ‘할로모나스 티타니카에’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박테리아는 철을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황 환원 박테리아는 구조물이 찌그러지면서 생긴 작은 틈새처럼 산소가 없는 부분에도 침투했다. 이들은 황을 생성하고, 이 황은 바닷물에서 황산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 황산은 배의 금속을 부식시켜 다른 미생물이 섭취할 수 있도록 철을 방출한다.
과학자들은 배가 침몰하면서 선미가 더 많은 손상되었기 때문에, 선미가 선수보다 40년 정도 더 일찍 부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스턴 플로리다 주립대의 미생물학자 앤서니 엘-쿠리는 캐나다 출신 영화감독이자 심해 탐험가인 제임스 카메론과 함께 미생물이 타이타닉의 부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해왔다. 그는 “손상 누적 때문에 배가 부서졌던 부분이 더 빨리 부식되고, 그 지점에서 상대적으로 온전한 선수나 앞쪽으로 부식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선미는 전체적으로 손상되어 해저에 녹아내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왕복 기관과 꼬리, 방향타, 프로펠러는 그나마 온전한 상태라서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2005년 난파선을 탐험하던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 안에 있는 터키식 목욕탕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녹 덩굴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카메론 감독은 이것에 “녹의 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원격 조종 장비로 확인해 보니 욕실에 있는 티크(가구용으로 많이 쓰이는 목재)와 마호가니 목공예품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 목욕탕이 배 안쪽 깊은 곳에 있다보니 산소가 없어서, 목재를 갉아먹는 박테리아나 기타 미생물이 서식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욕실 바닥에서 1.5m 높이까지 녹의 꽃이 나무 가지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녹의 꽃은 지구 자기선 방향으로 가지를 뻗었다. 엘-쿠리와 카메론, 다른 동료들은 잔해에 서식하는 “자성” 박테리아 군집이 이 녹을 만들었다고 추정할 만한 단서도 찾아냈다. 자기장에 따라 정렬할 수 있는 철의 미세 결정을 가진 박테리아를 발견한 것이다. 엘-쿠리는 이 박테리아 군집이 타이타닉의 철을 갉아 먹으면서 지구 자기장 선을 따라 수직으로 “피어나는” 녹 흔적을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철로 차린 거대한 밥상
타이타닉으로 인해 해저에 유입된 풍부한 철과 금속은 타이타닉 주변에 특별한 생태계를 만들어 냈다. 철이 부식되면서 주변 물에 녹아든 철 입자로, 원래 심해에는 부족했던 철분이 풍부해진 것이다.
엘-쿠리는 “철은 지구에 흔한 원소이지만, 바다 속에서는 용해된 철이 희소하다”고 말했다. 심해에서는 보통 화산 열수 분출구가 철의 주요 공급원 역할을 하고, 박테리아가 이 철을 근처의 다른 생물에게 제공한다.
엘-쿠리는 “타이타닉 난파선은 해저에서 있는 거대한 철의 오아시스”라며 “호화 여객선 모양의 철 4만6000톤을 바다에 밀어넣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 오아시스는 영양분을 제공해 불가사리와 말미잘, 육방해면류, 산호, 해삼이 서식하는 해양 산호초의 성장을 돕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철을 먹는 박테리아 군락도 있죠.”
엘-쿠리와 동료들은 이 박테리아가 타이타닉의 철을 먹을 뿐만 아니라 산소 대신 “철로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놀라운 생태계는 언젠가 지구 너머 유로파 및 다른 우주 바다에서 발견할 수도 있는 생물에 대한 시사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타이타닉의 철은 바다 밑바닥에도 영향을 준다.
녹이 연간 약 10cm의 속도로 난파선에서 퍼져나가고, 해저 퇴적물에도 매년 최대 15cm 깊이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은 특히 선미 주변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과학자들은 타이타닉 러스티클이 형성된 부위에서 매일 약 0.13~0.2톤의 철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배의 선수에 있는 철이 280년에서 420년 안에 완전히 분해될 수 있다고 추정한다.
바다 속 해류
타이타닉 잔해 붕괴 속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해수면의 강한 해류가 보트와 수영하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심해 해류도 물속에 있는 물체를 움직이다. 심해 해류는 해수면 해류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많은 양의 물을 동반한다. 열염 해류로 알려진 심해 해류는 해수면의 바람이 그 아래에 있는 물기둥에 영향을 주거나 심해 조수 또는 온도와 염분으로 인한 물의 밀도 차이로 인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수면의 소용돌이와 관련된 ‘저생성 폭풍’도 바다 속에 있는 물체를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하고 산발적인 해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타이타닉 주변 해저의 퇴적물과 난파 잔해 주변 오징어의 움직임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타이타닉과 해저 해류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찾아냈다.
우선 타이타닉의 일부는 ‘서쪽 경계 해류’로 알려진 차갑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의 영향을 받는 해저 부분 가까이에 있다. 이 “바닥 해류”의 흐름은 퇴적물과 진흙이 이동하는 모래 언덕, 잔물결, 리본 모양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해저에서 관찰된 대부분의 지형은 비교적 약하거나 중간 정도의 해류와 관련이 있다.
타이타닉 잔해가 있는 지점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모래 파문은 또한 서쪽으로 흐르는 해류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주요 잔해가 있는 지점에서는 해류가 북서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데, 과학자들은 아마도 큰 잔해 조각이 해류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 있다.
선수 부분의 남쪽 주변은 특히 북동쪽에서 북서쪽, 남서쪽으로 해류가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Alamy
이 여러 해류들은 강도가 특별히 센 것은 아니지만, 약화된 잔해를 부서뜨릴 수는 있다. 세이퍼트는 “잠수정에서 발생하는 해류도 약화된 구조물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잠수정이 러스티클을 떨어뜨려 해당 부위의 부식을 지연시킬 수도 있습니다.”또한 해류가 타이타닉의 잔해를 완전히 분해되기 전에 퇴적물에 묻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잔해가 퇴적물에 묻히기 전에, 타이타닉의 상징적인 부위들은 사라질 지도 모른다. 카메론 감독이 타이타닉을 소재로 1997년 개봉한 영화에서 잭과 로즈가 서 있던 유명한 장면에 나오는 뱃머리 난간이 최근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엘-쿠리는 “타이타닉의 상부 구조물인 계단 로비와 특실, 장교 숙소 등 난파선의 상징적인 부분이 2100년쯤이면 사라질 것 같고, 이 때문에 잠수정 탐사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갑판 난간과 데크 하우스처럼 얇은 강철은 일찍 분해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난파 잔해가 완전히 사라지려면 몇 세기는 걸릴 것입니다.”
엘-쿠리는 또 퇴적물에 묻힌 큰 강철 조각은 금속을 먹는 미생물과 접촉하지 않아서 수백 년 더 남을 수도 있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난파선은 궁극적으로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이 난파선의 강철 구조는 녹이 슬어 부서져 내리는 반면, 타일과 변기, 황동 부속은 바다 속 퇴적물에 파묻히고 있다.
엘-쿠리는 “터키식 목욕탕의 타일 같은 소재는 거의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타닉 잔해는 인간의 오만과 타락이 빚어낸 비극을 새긴 초라한 기념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수많은 아픔으로 굴곡졌던 배 한 척의 조용한 마침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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