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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끝의 기억, 레분』
작고 낯선 섬.
그곳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쿠슈호 캠핑장의 고요함은, 내 마음의 주름까지 펼쳐주는 듯했다.
나는 혼자였다. 아스라이 빛바랜 텐트를 치고, 호숫가에 걸터앉았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바람이, 내 오래된 마음의 틈으로 스며들었다.
해는 느리게 지고, 구름은 느릿한 꿈처럼 흘렀다.
처음엔 적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정적’이 아닌, ‘귀 기울일 수 있는 여백’이었다.
레분섬 북쪽. 호수에서 조금 걸어가면 넓은 들판이 있다. 그곳에 개불알꽃이 피어 있다.
이름은 이상했지만, 그 꽃들은 슬프도록 순했다.
거센 바닷바람을 그대로 견디며 살아가는 꽃들. 작고, 여리고, 강한.
그곳에 앉아 나는 오랜만에 나 자신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향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레분섬은 내게 그 조용한 자유를 주었다.
누군가 물을 수도 있다.
“왜 하필 여기였어요?”
그러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이곳은 나를 말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거든요.”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창밖을 보며 속삭였다.
‘고마워요, 레분. 나중에 꼭 다시 올게요. 그리고… 그땐 누군가 손을 꼭 잡고 오고 싶어요.’
자연에 대한 애정과 아름다움을 담아 마음속 작은 약속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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